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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de.D Book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김지영들의 눈물





[82년생 김지영]


조남주 지음





 순식간에 책에 빠져든다. 김지영 씨의 상태는 과연 어떻게 된 것인가 궁금증을 참지 못하며 시간 가는 줄 모르고 페이지를 넘겼다. 82년생 김지영 씨는 정대현 씨와 2년을 열렬히 연애하고 결혼해서 3년을 같이 살고 있다. 정대현 씨는 요새 들어 빙의와 같은 이상증세를 보이는 아내 김지영 씨가 점점 낯설어진다. 이에 이상한 낌새를 느낀 정대현 씨는 스스로 증상을 자각하지 못하는 김지영 씨를 위해 요즘 자도 못 자고 힘들어 보인다며 정신과 상담을 권하게 된다.



 김지영 씨의 이상 증세의 이유가 궁금해 페이지를 넘겼다. 이때부터 김지영 씨의 어린 시절 이야기가 시작된다. 아버지와 남동생부터 밥을 퍼 담은 것은 당연하고 온전한 모양의 반찬들은 남동생 입에 먼저 들어가고 나머지 부스러기를 언니인 김은영 씨와 김지영 씨가 처리했으며 젓가락, 양말, 내복 상·하의 등의 물건들이 남동생은 짝이 온전히 맞았지만, 언니와 김지영 씨는 제각각이었다. 이뿐만이 아니라 김지영 씨가 살면서 겪은 사소한 일들에 남아선호사상이 깊게 배어있다. 그러나 김지영 씨는 남동생이 특별한 대우를 받는다고 부럽다는 생각조차 하지 못한다. 그 시절, 다 그랬으니까. 5남매였던 김지영 씨의 어머니는 초등학교 시절 가장 공부를 잘했음에도 오빠 뒷바라지를 위해 선생님이 되고픈 꿈을 접어야 했다. 딸에게 푸념 섞인 이야기를 하는 모습에서 그 시절에 묻어있는 분위기를 짐작할 수 있었다.



 여아보다 남아의 비율이 점점 높아져 여중, 남중이 남녀공학으로 전환 되던 시절. 역시 그 안에서도 여학생은 남학생들에 비해 부당한 차별 대우를 받는다. 여학생들은 특히 복장 규정이 엄격했는데, 여름에는 살색 스타킹에 흰 양말을 신어야 했고 한겨울에는 양말도 없이 비치지 않는 검은색 스타킹을 신어야 했으며 운동화는 허용되지 않았고 구두만 신어야 했다. 남학생은 바지 폭을 제외한 나머지 사항들은 눈감아 주었다. 한번은 여학생이 운동화를 신고 등교하다가 교문에서 붙잡혔는데 왜 남학생들에게만 면티와 운동화를 허용하느냐고 항의를 했다. 교권이 높던 시절, 여학생을 그 권위에 무너지지 않고 당당하고 용기 있게 할 말을 내뱉었다. 책을 읽는 내내 차별대우로 인해 불편했던 감정이 어느 정도 해소되며 꽉 막히고 답답했던 속이 좀 뚫린 기분이었다.



 김지영 씨가 학원 특강이 있던 어느 날, 꽤 늦은 시간에 집으로 버스 타고 들어가는 날이었다. 자신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을 거라고 착각한 같은 학원 남학생이 같은 버스를 쫓아 타며 같은 버스정류장을 쫓아내렸다. 공포감에 휩싸여 있던 상황에서 한 여자의 도움으로 두려웠던 상황을 모면한다. 그런데 아버지에게 왜 그렇게 멀리 학원에 다니느냐, 왜 아무나하고 말 섞고 다니느냐, 왜 치마는 짧냐... 오히려 혼이 많이 났다. 김지영 씨가 잘못한 것이 아니어도 혼나는 건 김지영 씨였다. 학생 잘못이 아니다, 세상에는 더 좋은 남자가 많다는 그 여자의 한 마디가 아니었다면 김지영 씨는 남자에 대한 환멸과 공포감에서 벗어나는데 꽤 오랜 시간 걸렸을 것이다. 요즘이라고 다르지 않다. 우리 가족만 봐도 나는 새벽까지 돌아다녀도 아무런 문제를 삼지 않지만 내 여동생은 허용되지 않는다. 여자가 잘못한 것이 아닌데, 위험하단 이유로 여자란 이유로 누릴 수 있는 자유를 박탈당하고 있는 셈이다.



 맞닥뜨릴 수 있는 상황마다 존재하는 미세한 차별을 풀어내는 담담함에 서글픈 마음이 들었고 눈물을 글썽이며 읽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에 대해 한층 더 깊이 이해하는 계기가 되었다. '김지영'들의 눈물의 의미와 그녀들이 어떤 생각과 고민을 하며 사는지에 대해 나는 너무나도 둔하고 무지했다. 한국 사회에서 여자가 얼마나 많은 차별과 폭력 속에서 살고 있었는지 책을 통해 경험할 수 있었다. 대학교 동아리에는 여자 회장이 없었고 택시 운전사는 첫 번째 손님으로 여자를 태우지 않았고 취업 시장에서는 남자를 선호했고 장모님과 함께 살면 좋은 남편이라 불리었지만, 시어머니와 살면 좋은 사람이라 불리지 않았고, 여자는 여자 같단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 회식 자리에 끝까지 남았고, 야근과 출장도 늘 자원했고, 아이를 낳고도 한 달 만에 출근했다. 회식 자리에서는 부장의 성희롱이 난무했고 회사에서는 여직원을 오래갈 동료로 보지 않고 중요한 팀에 투입되지도 않았다.



 한쪽의 시선으로만 쏠려 있어 책 자체가 다소 편향적인 느낌은 들지 않을 수 없다. 김지영 씨가 겪는 일들은 불편한 내용뿐이지만 사회에선 공공연하게 겪을 수 있는 현실이자 진실이다. 이 책은 주위에 있을법한 이름인 '지영'이란 극도로 평범한 주인공의 이름으로 지극히 평범한 인생을 그리고 있지만, 책을 읽는 내내 불편했던 건 왜일까. 누구나 겪을 수 있는 평범한 인생을 묘사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토록 불편한 걸까. 역사적으로, 사회적으로 우리는 우리도 모르게 남녀 차별적인 생각이 뿌리 깊숙이 박혀있다. 이 뿌리를 뽑기 위해, 그리고 더 이상 김지영들의 눈에 눈물이 맺히지 않도록 우리는 모두 함께 고민해야 한다.